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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9년]K리그를 수놓았던 등번호 '9'번 이야기


과거에는 국내 선수의 상징, 최근엔 외국인 선수에게로 권력이동

[이성필기자]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등번호 9번으로 등록돼 은퇴했거나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총 96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클래식과 챌린지 22개 구단 소속을 빼면(대전 시티즌은 없고 경찰축구단은 전역) 76명이 K리그에서 등번호 9번을 끝까지 달았던 것이다. K리그의 30년 역사를 생각하면 상당히 적은 숫자다. 기록 관리에 소홀했던 K리그 과거 분위기로 인해 누락된 선수들을 포함하면 더 많아질 것이다.

축구에서 9번은 전통적으로 골잡이를 상징하는 번호다. 현대 축구로 들어와서는 번호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상징성은 있다. 96명 중 56명이 외국인 선수일 정도로 9번 달기가 쉽지는 않다. 역설적으로 국내프로축구 전반에 걸쳐 공격수로는 외국인 선수들이 중용되고 있다는 뜻과 같다.

표본으로 수원 블루윙즈만 살펴봐도 그렇다. 1996년 창단 첫 해 이진행(현 부산 아이파크 코치)에게 9번이 주어졌다. 이진행은 2000년까지 9번을 달고 그 해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84경기에서 11골 4도움을 기록했다. 기록 자체가 뛰어나지는 않아 9번의 상징적인 역할에는 미흡했다.

이에 대해 수원 관계자는 "당시 김호 감독은 등번호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창단 당시 이진행이 중선참급이라 다른 선참들이 먼저 등번호를 선택한 뒤 남은 것을 받았다. 그게 그대로 쭉 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프로연맹에 이진행의 최종 등번호 기록은 누락, 공란으로 남아있다.

이후 수원에서 9번의 주인공은 서동원(2001년)→정용훈(2002년)→뚜따(2003년)→마르셀(2004년)→산드로(2005년)→올리베라(2006년)→에두(2007~2009년)→호세모따(2010년)→오장은(2011년~현재) 순으로 이어졌다. 딱 봐도 구단의 역사가 보인다. 국내 선수가 달던 것이 2003년을 기점으로 외국인 선수에게 9번이 넘어갔다.

그만큼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컸다는 뜻이다. 2004년과 2008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 당시 주역인 마르셀과 에두가 대표적이다. 이후 제대로 된 외국인 선수 영입이 안되면서 9번은 오장은에게 돌아왔다. 오장은은 중앙 미드필더지만 종종 공격에 가담해 골도 넣는다. 팀의 중심을 잡는 선수에 대한 믿음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특징있는 9번 선수는 많다. 오장은과 같은 느낌의 9번은 현재 포항 스틸러스 중원의 핵 황지수가 달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팀의 주장이자 선참, 4-2-3-1 포메이션의 중앙에서 전체를 컨트롤하는 지휘관이다.

1980년대 중반을 호령한 미드필더 노수진(당시 유공)은 등번호 9번으로서 공격까지 겸하며 능력을 뽐냈다. K리그 8시즌 동안 136경기 45골 19도움의 기록이 말해준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은 첫 국가대표 발탁 때를 회상하며 "대표팀에서 노수진, 최강희 선배와 한 방을 썼었다. 그 때는 숨도 못쉬었다. 모든 선배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에 들어갔다. (노)수진 선배의 카리스가 대단했다"라고 전했다.

포철과 대우, 일화에서 생활했던 '비운의 천재' 김종부도 빼놓을 수 없는 9번 계보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으로 인해 천재적인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것으로 축구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여기저기서 소유권을 행사하니 제대로 축구가 될 리 없었던 안타까운 9번이었다.

외국인 선수들 중에서는 2005년 울산 현대에 정규리그 우승을 안긴 마차도가 기억된다. 그 해 마차도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영입된 뒤 17경기서 13골을 몰아치며 우승에 일조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와 챔피언결정 1차전 2골은 특히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인천을 중심으로 삼았던 영화 '비상'에서는 해트트릭을 해내며 5-1 승리를 이끈 이천수(현 인천 유나이티드)가 악의 축처럼 나왔지만 마차도도 냉혹했다. 당시 마차도는 15번을 달았지만 이런 빼어난 활약으로 9번으로 바꿔 달았다.

2011년 한국 등록명을 '박은호'로 했던 대전 시티즌의 바그너도 기억에 남을 9번 선수로 꼽힌다. 브라질 출신의 박은호는 원래 이름이 바그너였지만 발음에 착안해 대전 프런트가 바그노, 박근호를 거쳐 박은호로 등록시켰다. 프리킥이 일품이라 개막 후 3경기 연속골을 넣으며 대전을 기쁘게 했다. "한국인 아내를 얻고 싶다"고 하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3년 현재 K리그의 9번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196㎝ 장신 공격수 김신욱(울산 현대)은 18골 9도움으로 득점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그의 대표팀 발탁 여부는 최근까지도 주요 이슈였다.

지난해 대전 시티즌에서 9번을 달고 16골 4도움을 기록했던 케빈은 전북으로 이적해서도 같은 등번호를 유지하며 14골 5도움을 해내고 있다. 아직 시즌 경기가 남아있어 대전에서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9번의 전설' 설기현(인천 유나이티드)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현재 K리그 9번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서른 다섯이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인천과 계약이 만료된다. 인천은 설기현을 꼭 붙잡아 팀의 정신적 지주로 삼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 외에 FC서울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애쓰고 있는 에스쿠데로나 홍명보호 발탁을 위해 온 힘을 쓰고 있는 김동섭(성남 일화) 등도 주목해야 하는 9번이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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