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기자] "정말 자존심 상했어요. 이번에는 반드시 회복을 할 겁니다."
여자 핸드볼 맏언니 우선희(36, 삼척시청)와 중선참으로 성장한 김온아(26, 인천시청), 골잡이 류은희(24, 인천시청)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에 그친 한을 가슴에 품었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에게 4강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 4년을 기다렸다.
우선희는 '우생순'으로 불렸던 2004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의 마지막 세대다. 투혼과 투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를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수해줬다. 절치부심이라는 단어가 딱 맞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천 아시안게임을 기다렸다.
우선희가 개인적으로 크게 아쉬울 것은 없다. 2002 부산, 2006 도하 대회에서 이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일본에게 패한 것 자체가 치욕스러웠기에, 또 후배들이 일본의 급부상에 흔들리지 않도록 기틀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했다.
대표팀 소집 때마다 우선희는 광저우의 아픔을 수없이 강조했다. 금메달을 따내야 아시아 국가들이 한국 여자 핸드볼을 쉽게 넘볼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맏언니의 의도는 통했다. 우선희는 1일 열린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먼저 몸을 던졌다. 일본을 상대로 라이트 윙의 클래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타점 높은 슛과 수비 뒷공간으로 빠져들어가는 움직임에 일본 수비는 속수무책이었다. 전반 첫 골과 마무리 골을 모두 우선희가 넣으며 자신이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김온아도 누구보다 승리를 갈망했다. 숨이 차오르도록 훈련을 하면서 일본전을 기다렸다. 김온아는 지난 2012 런던올림픽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발을 헛디뎌 오른 무릎 인대 파열 부상으로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대표팀은 언제나 김온아를 원했지만 몸이 따르지 않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핸드볼을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고, 날로 늘어나는 실력을 보여줬지만 부상 뒤에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광저우 한풀이가 김온아를 다시 일으켜세웠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 오직 금메달만 바라봤다. 임영철 감독은 애제자 김온아를 냉정하게 다루며 승리욕을 자극했다. 김온아는 예선에서는 큰 힘을 쏟지 않으며 결승만을 기다렸고 일본을 만나자 감춰놓았던 득점력을 폭발시켰다.
김온아와 소속팀이 같은 류은희는 넘치는 힘으로 라이트백에서 상대 피봇을 꽁꽁 묶었다. 득점력은 김온아, 우선희 이상이다. 류은희 역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없어 절실하게 뛰었다. 일본이 유니폼을 잡고 늘어져도 쓰러지지 않았다.
류은희가 수비에서 크게 기여하니 공격은 술술 풀렸다. 일본은 한국의 가운데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지만 류은희는 철벽에 가까웠다. 득점까지 해주니 그야말로 무서운 존재였다. 로빙슛, 언더슛, 직선슛 등 모든 공격 방법이 다 통했다. 한국의 주득점원 역할을 충실히 하며 런던 올림픽에서 발굴한 유망주가 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했음을 확인시켜줬다.
한을 품은 이들의 완벽한 호흡이 치욕을 씻는 금메달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자핸드볼이 일본에 말끔히 설욕한, 아름다운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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