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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년]충무로 이끈 여풍 3인방② 영화사집 이유진 대표


"내가 보고 싶은 영화 만들어왔다"…흥행 타율 높은 제작자로 꼽혀

[권혜림기자]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는 영화사집의 이유진 대표는 완성도와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수작들을 탄생시켜왔다. 충무로를 누비고 있는 출중한 제작자들 틈에서도 그는 확실히 '타율'이 높은 제작자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영화가 소위 '중박' 이상의 기록을 냈다. 일 년에 한 편 씩은 꾸준히 작품을 내놨고 정통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 가족극과 수사극, 판타지와 스릴러까지 그 장르도 다채로웠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는 한국 영화계를 누벼 온 여성 제작자들을 만나 그들의 영화 인생을 함께 돌아보고 충무로의 현 주소를 진단했다.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로 7년을 일했던 이유진 대표는 1997년 영화 '정사'의 마케팅을 시작으로 영화계에 입성했다. 많은 영화인들과 달리 '시네키드'도 '시네필'도 아니었던 이 대표는 오히려 대중과 더욱 가까운 눈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었다. "영화 한 편의 제작을 결심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지는 않지만 '내가 보고싶은' 영화를 만들어왔다"는 그의 철학은 그래서 흥행작들의 탄생으로도 이어졌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품고 달려오진 않아서, 7년의 시간을 광고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외부의 시각으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하게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를 만드는 일을 굉장히 좋아하면서도 영화 자체를 제3자의 시선에서 보는 셈이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애써요. 당연히 마음이 약해질 때도, 판단이 흐려질 때도 있죠. 가끔은 일반 대중과 영화계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느끼며 놀라기도 해요. 제 안에서 그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도 생각하죠."

지난 2005년 12월 영화사집을 창립한 이래 이유진 대표는 '그놈 목소리'(2007), '행복'(2007),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내사랑 내곁에'(2009), '전우치'(2009), '초능력자'(2010),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감시자들'(2013), '두근두근 내 인생'(2014)까지 쉴틈 없이 아홉 작품을 선보였다. 부침이 심한 영화계에서 1년에 평균 한 작품씩을 꾸준히 내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해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은 있어요. 처음 영화사집을 설립하고 한두 작품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시장 환경에서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어요. 마음으론 더 많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2년에 세 작품은 하고 싶죠.(웃음) 늘 준비는 하고 있지만 영화계엔 변수들이 많으니까요."

영화사 봄의 프로듀서로 일하다 영화사집을 차리며 독립한 지 10년, 제작 환경을 둘러싼 변수들도 끊임없이 요동쳤다. 이 대표는 "투자 환경, 배우 매니지먼트 환경, 시장 환경 등 모든 것이 변했다"며 "서울극장에 줄을 선 관객들의 모습이 엊그제의 풍경 같은데, 멀티플렉스가 이렇게 많아질 줄 누가 알았겠나. 시장 환경은 끝도 없이 변해왔다"고 돌이켰다.

"환경적 변수도, 내적 변수도 있지만 사실 좋은 시나리오가 원하는 시기에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기획의 만남이 가장 이상적이죠. 시나리오 개발 단계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에요. 물론 가장 재밌기도 하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단계를 거쳐 시나리오를 어떤 모양새의 영화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 그게 재밌어요. 가장 힘든 일이지만 가장 설레고 기대되는 일이기도 하죠."

이유진 대표가 자주 받는 질문들 중 하나는 쟁쟁한 배우들을 척척 캐스팅해내는 비결이다. 강동원·설경구·임수정·황정민·고수·정우성·송혜교·류승룡·이선균·김명민 등 그와 함께 했던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영화사집을 설립한 이래 설경구와는 '그놈 목소리'와 '감시자들' 두 편을 작업했다. 강동원과는 '전우치'와 '초능력자', 최근작 '두근두근 내 인생'까지 무려 세 편을, 임수정과도 '행복' '전우치' '내 아내의 모든 것' 세 편을 함께 했다.

"첫 번째로, 캐스팅은 시나리오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친분만으로는 절대 되지 않아요. 미심쩍어하는 배우를 더 설득하는 일은 친분으로도 가능하지만, 기본적으론 시나리오가 배우를 감동시키고 설득해야 하죠. 두 번째로는 운을 꼽을 수 있겠죠. 아무리 용을 써도 배역의 주인은 따로 있더라고요. 캐스팅 문제로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문득 결과적으로 출연하게 된 그 배우가 그 인물을 연기할 주인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광고 일을 그만두고 영화인의 길을 택한 이유진 대표는 새로 일군 삶의 터전에서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워낙 무심하고 무딘 성격을 지녔다"는 그는 "그저 하루 하루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장점이랄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바득바득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론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제작자로서 이유진 대표의 고민은 늘 "어떤 영화로 어떻게 관객을 찾아갈 것인가"다. 그는 "관객들의 취향도, 영화관에 가는 목적도 계속 변하고 있는 것 같다"며 "다른 볼거리가 적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TV 채널도 다양해지고 온라인 게임이 큰 인기를 얻는 등 많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많은 오락거리가 생긴 와중에 극장에서 볼 영화는 어떤 영화가 될 것인지, 그런 고민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어떤 영화적 체험을 줄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낼 것인지 계속 고민하죠. 경쟁이 치열해지니 고민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이하 이유진 대표와 일문일답

-관객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영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영화 외 다른 매체들에도 관심을 두고 있을 것 같다.

"드라마를 좋아한다. 미국 드라마도, 한국 드라마도 좋다. 잘 만든다.(웃음) 최근엔 tvN '미생'과 KBS 2TV '연애의 발견'도 봤다. SBS '비밀의 문'도 보고 있다. 미국 드라마들 중엔 수사 드라마 장르를 좋아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도 1,2시즌을 재밌게 봤다. 사실 드라마 만드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대본이 안 나온 상태에서도 해외 로케 촬영을 가서 촬영을 끝내고 온다. 대단한 것 아닌가.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하루 1,2시간 분량의 콘텐츠를 계속 뽑아내는 셈이니까."

-자신이 제작한 영화의 흥행 추이를 잘 맞추는 편인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올해 경향은 블록버스터, 큰 사이즈의 영화들이 잘 된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응할 만한 규모 큰 영화들은 영화관에 가서도 대작을 보는 느낌을 충분히 주니까. 작은 영화는 작은 대로 관객을 잘 찾아가야 하는데 그 방법과 과정에 대해선 고민 중이다."

-캐스팅을 잘 하는 제작자로 알려져 있지만 유독 애를 먹었던 캐스팅도 있는지 궁금하다.

"애를 먹지 않았던 캐스팅이 오히려 많지 않다. 캐스팅 뿐 아니라, 말 그대로 쉽게 이뤄지는 것들이 별로 없다. 힘듦에도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 하지 않나. 캐스팅이 쉬우면 다른 어떤 과정이 힘들다. 현장이 힘들다거나. 어디서든 힘든 부분이 없기란 쉽지 않다. 긴 기간 많은 이들이 모여 하는 작업인데다 계속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작 작품들 중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 된 영화가 있다면?

"기대를 잘 누르는 편이다. 손익분기점이 200만 명이라면, 250~300만 명 정도만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잘 되면 당연히 좋지만 그건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아닌 것 같다. '손익분기점을 지나 50만 명만 더 들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 이상 되면 물론 다 좋고 기쁘다. 제작비를 많이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정말로 있다. 40~50억 원 예산의 영화들이 쉬워보여도 생각해보면 그건 굉장히 큰 돈이다. 더 많이 들어가면 그만큼 손익분기점이 높아지지 않나. 시장의 사이즈는 정해져 있으니 부담감은 있다."

-그래도 감독의 상상력을 구현한 대작들을 보면 욕심이 날 법 한데.

"'그래비티'처럼 우주에 대한 영화의 경우, CG 작업의 힘이 절대적이지 않나.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사실 '아, 저런 영화 한 번 해 봐야 하는데' 생각한다.(웃음) 멋진 영화들을 보면 '저 시나리오를 내가 봤다면 영화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하고 자문한다. '그래비티'를 보곤 충격도 받았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그걸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길러야 할 텐데' 생각했다. '그녀'를 보고도 '내레이션이 들어갔다고 비상업적이라 생각하진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비긴어게인'의 경우에도 시나리오 단계엔 어땠을지 궁금했고. 영화를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사람이니 아이템의 첫 선택부터 끝없이 점검한다. 경험치가 쌓이는 만큼 편견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한다."

-제작사 대표로 약 10년의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어떤가?

"요즘 젊은 세대 감독들과 점점 나이차가 벌어진다.(웃음) 10년이 지나는 동안 현장에서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게 됐다. 계속 대화하고 젊은 세대 감독, 스태프들과 같이 호흡하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어려운 사람이 되면 안될 것 같더라. 다른 직종이면 모르겠는데 영화 일에선 수평적 관계가 중요하다고 본다. 각 분야에서 상호 관계를 통해 창조적인 일을 하는 작업이니 제게 경험치가 조금 있다는 것 외엔 각자의 포지션이 있는 셈이다. 많이 대화하고 소통하고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더라."

-여전히 이 일이 재미있나?

"오늘 설경구 배우의 인터뷰 기사를 보는데 '20년 연기했다. 기술이라도 배웠으면 기술이라도 있을 텐데 보여줄 것도 없고 뭐 그렇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더라. 그 고민이 너무 크게 와닿았다. 매번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작업이라 매번 힘들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관성에 젖지 않고 재밌는 면도 있지만 반면 너무 힘든 순간도 있다. 그래도 영화를 만드는 게 굉장히 재밌고 잘하고 싶다. 끝없이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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