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2년]MBC SPORTS+ 정순주 아나운서②"선수들이 중계를 잘 활용했으면…"

무용 선생님에서 스포츠 현장으로 "오래 가는 스포츠 아나운서가 꿈"


축구에서 '12'라는 숫자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11명의 선발 선수 다음 가장 먼저 코칭스태프의 믿음을 받고 출전하는 첫 번째 교체 선수, 일명 '특급 조커' 내지는 '슈퍼 서브(Super Sub)'라고 하지요. 또 있습니다. 관중석에서 12번째 선수가 돼 응원을 하는 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경기장 안팎에서 경기를 만드는 구성원 모두가 12번째 선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창간 12주년을 맞이한 조이뉴스24는 이 12번째 선수 중 한 명을 만나봤습니다. 케이블 스포츠 채널 MBC SPORTS+ 축구 생중계를 통해 축구팬들로부터 사랑받으며 'K리그 여신'으로 떠오른 정순주(31) 아나운서입니다.

<①편에 이어서…>

[이성필기자]"핸드폰 괜찮아요?"

엠비시 스포츠 플러스(MBC SPORTS+, 이하 엠스플) 정순주 아나운서를 만난 기자는 핸드폰의 안위(?)부터 물었다. 기자를 만나기 전날인 지난달 26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6~2017 KCC 프로농구 원주 동부-창원 LG전 생중계에서 정 아나운서는 경기 시작 전 코트 구석에서 프리뷰 리포트를 하던 중 농구공이 날아와 들고 있던 핸드폰에 맞았고 코트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몸을 풀던 선수의 농구공이 림에 잘못 맞아 날아온 돌발 상황이었다. 당황할 법도 했지만 정 아나운서는 태연하게 시청자들에게 알려줘야 할 정보를 전달한 뒤 경기장 전체로 화면이 넘어가고 나서야 코트에 나뒹군 핸드폰을 살폈다. 중계진은 "정순주 아나운서 프로 의식 대단합니다"라며 칭찬을 쏟아냈다.

정 아나운서는 "생방송은 시청자와의 약속이니 돌발 상황이 나와도 흔들리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2015~2016 시즌 프로농구 시상식에서는 메인 아나운서의 즉흥적인 지시를 재미있게 이행해 농구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등 현장 대응 능력이 수준급이라는 평가다.

#무용 학도, 아나운서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정순주 아나운서는 학창 시절 예체능에 소질을 보였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리틀엔젤스예술단 활동을 했어요. 탤런트 박한별, 황정음이 1년 선배예요. 예술중, 예고를 나와서 한국무용으로 이화여대에 진학해 순수 무용인으로 있다가 3학년 때 무용 교육에 눈을 떠서 선생님으로 활동했어요. 4~5년 하면서 대학원 석사 학위를 했죠. 박사도 하려고 했는데 석사를 너무 빨리 끝내서 좀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SBS 뉴스를 보고 있는데 박선영 아나운서가 나오더라고요. 정말 예쁘더라고요. 어머니한테도 '정말 저 아나운서 예쁘고 말도 잘한다'고 했어요. 아나운서 학원에 가볼까 해서 갔는데 카메라 앞에 서니 좋더라고요. 그런데 학원 선생님이 '너는 스포츠 아나운서가 어울릴 것 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용과를 나와서인지 활동적으로 보였나 봐요."

그렇게 아나운서를 준비한 지 3개월 만인 2012년 초, 당시 프로야구 중계권을 갖고 있던 씨제이 이앤엠(CJ E&M)의 케이블 채널 XTM을 통해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데뷔했다. 당시 XTM은 기존 스포츠 케이블 3사를 따라잡기 위해 정 아나운서를 포함해 총 5명의 아나운서를 선발해 경기 생중계와 관련 프로그램에 투입했다.

XTM은 이들 5인방을 띄우기 위해 연예인 느낌의 마케팅을 펼쳤다. 좋게 표현하면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후발주자의 노력이었지만 반대로 '여자 아나운서'를 소모품으로 만드는 반대작용도 있었다. 또, 시청자들의 시선에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는 중계의 볼거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가벼운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형태로 고용했고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당시 스포츠 아나운서가 막 관심을 받는 시기였어요. 스포츠라는 게 기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하면 정말 힘든데 그대로 생방송에 투입됐어요. 프로야구가 무엇인지, 대본을 어떻게 읽는지도 몰랐어요. 시청자들에게 많은 욕도 먹고 그러면서 하나씩 배우다 보니 5명 중 저 혼자 스포츠 아나운서로 남았어요. 나머지 4명은 다 다른 곳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스포츠 판에서는 저에게 '잡초'라고 하더라고요."

#머릿속에 칩을 넣으면 바로 나오는 정도가 됐어요

살아남기까지 고민도 깊었다. 3년차까지는 스포츠 중계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미래는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프리랜서로서 생존에 대한 불투명함도 걱정스러웠다. 오죽하면 무용으로 다시 돌아갈까 고민도 했을 정도다. 그런데 현장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고민이 사라졌다고 한다. 지난해 엠비시 스포츠플러스의 부름을 받으면서 더 치열하게 경쟁에 뛰어들었다.

"제가 나이가 조금 많다 보니 어떤 시청자는 댓글에 '할머니'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이름도 '순주'라서 그런가 촌스럽다는 거죠. 나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은데 오직 외모로만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신뢰 있는 아나운서가 되려고 더 노력 중이에요."

올해 엠스플이 프로야구, 프로농구에 이어 프로축구 K리그 중계권을 3년간 확보하면서 정 아나운서는 더 바빠졌다. 동료 아나운서들과의 협업으로 그나마 부담이 덜하지만, 경기를 배정받으면 초집중을 해야 한다.

"지금 두 달째 하루도 못 쉬고 있어요. 몸은 힘든데 그냥 버티고 있어요. 아마 머릿속에 야구, 축구, 농구라는 칩을 넣으면 바로바로 관련 내용을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인 거죠. 스포츠가 좋아서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현장감이 있고 아는 게 많아지니 이야기를 할 것도 쏟아지더라고요. 대견하지 않나요.(웃음)"

그를 알아보고 선물을 하는 팬까지 생겼다고 한다. 물론 야구장에서의 인연이다. 경기장에 가면 매번 쇼핑백에 다양한 종류의 꽃을 선물하는 팬도 있었고 장문의 편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팬도 기억이 난다고 한다.

"한 팬은 제 사진을 액자에 넣어서 선물하더라고요. 저만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돈이 들어가니 죄송한 마음이 있기도 해요. 가장 기억 나는 팬은 머그컵과 편지를 준 팬이었는데 그날이 마지막 관전이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공부를 한다며 더는 오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응답을 해드리지 못하니 아쉽기도 한데 그분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축구를 부흥시키겠다는 사명감 & 스포츠 아나운서로 오래 가고픈 마음

의욕이 넘치는 정 아나운서는 PD도 잘 만났다. 중계를 재미있게 꾸미려는 중계 PD의 노력과 정 아나운서의 욕심이 만나 많은 재미난 장면을 연출한다. 포항 스틸러스 경기 중계를 앞두고는 영일만의 영일대 해수욕장 근처에서 마이크를 잡고, 수원 삼성이나 수원FC의 중계를 하면 수원성에 가서 경기 프리뷰를 찍어 온다.

경기 하프타임에는 팬들을 만나러 관중석에도 간다. K리그 중계권을 구매한 중국의 IPTV인 LeTV에서는 정 아나운서가 포항 경기 하프타임에 양동현(포항 스틸러스)의 아내와 인터뷰를 하는 동영상이 자체 페이지에서만 조회수가 70만을 넘었을 정도다. 일반 K리그 경기 중계가 평균 4~5만 정도 관전하는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중국 누리꾼들에게 정 아나운서가 재미난 구성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셈이다.

"1분 정도의 리포팅을 위해 온갖 지식을 알아야 하더라고요. 특히 스포츠는 기록과 이야기가 중요하잖아요. 해당 경기 관련 기사는 기본이고 기록도 찾아보고 할 일이 많아요. 경기 중 특정 상황을 목격하면 바로 PD에게 보고해요. 그러면 만들어보라고 지시가 와요. 서로 의사소통이 잘 되니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방송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하프타임에는 뭐든지 하게 되더라고요.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춤이라도 추라면 춰야죠."

정 아나운서는 해맑게 웃으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그 웃음이 딱딱한 K리거들의 굳은 마음을 풀어 흥미있는 장면을 만든다. 아나운서 학원에서 만나 함께 수학한 JTBC FOX SPORTS 3의 이유경 아나운서도 K리그 중계에 나서니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된다. 더 멋지고 재미난 장면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지는 이유다.

스포츠 여자 아나운서의 수명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좀 더 오래가는 방송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방송사가 특정 아나운서를 활용했는데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대체자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라 외모, 실력, 지식 모든 면을 잡아서 살아남겠다는 것이 정 아나운서의 솔직한 마음이다.

"모든 아나운서가 꿈꾸는 장면이 있어요. 지식과 경력이 쌓여서 (감독, 선수에게) '그 때는 그랬잖아요'라는 말로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대단한가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을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간접 체험 중인데 길게 할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정 아나운서는 "스포츠를 대하는 태도는 그 종목에 애정을 얼마나 쏟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야구, 농구, 축구를 다 다니지만, 축구는 아직 보수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방송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선수도 방송을 잘 활용해 유연하게 자기 홍보를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팬들도 좀 더 애정을 갖고 축구를 대했으면 합니다"라며 K리그 선수들과 팬들에게 부탁의 한마디를 던졌다.

기자도 K리거들의 언론 노출 증대를 위해 한 가지 솔깃한 제안을 하며 기사를 끝내려 한다. 내년 K리그 신인 워크샵 미디어 대응 교육은 단골 강사 박문성 SBS 해설위원의 독점 체제(?)를 깨고 정 아나운서나 이유경 아나운서가 나섰으면 어떨가 싶다. 교육 분위기가 180도 달라지고 선수들의 화법도 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본다.

<끝>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 조성우기자 xconfind@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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