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15년의 무명 생활이 있었지만, 이를 발판 삼아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 "인생을 바꿨다"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됐다. 그것이 바로 '패스트 라이브즈'다. 연기적으로도, 작품적으로도 세계에서 호평을 받은 '패스트 라이브즈'로 더욱 큰 날개짓을 할 수 있게 된 유태오다.
지난 3월 6일 개봉된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감독 셀린 송)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 분)과 해성(유태오 분)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넘버3' 송능한 감독의 딸이자 한국계 캐나다인인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유태오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NM]](https://image.inews24.com/v1/924fdf86fc08b4.jpg)
셀린 송 감독은 24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한 나영과 해성의 운명 같은 이야기를 섬세한 통찰력으로 포착하며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특히 인연이라는 단어를 통해 미묘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담아내 깊은 여운을 안겼다.
이에 제39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후 외신 및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 극찬을 받으며 단숨에 화제작으로 급부상했으며, 인디와이어, 롤링스톤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영화' 1위를 비롯해 타임지, 뉴욕타임스 등 '2023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선정됐다. 또 전 세계 72관왕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쾌거를 이뤘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러시아 인형처럼', 애플TV+ '더 모닝 쇼' 시즌 2, 3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와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유태오는 섬세한 멜로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음은 유태오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영국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가 됐고, 수많은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것에 대한 부담도 있나? 소감이 궁금하다.
"결과를 위해서 작품을 하는 건 아니다. 영화 만든 지도 2년 반이 넘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느꼈던 여운과 인연이라는 동양적인 철학에 대해 관객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또 하나는 감독님이다. 제가 느낀 걸 똑같이 느끼게 되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제 진출, 상을 받는 건 제작사나 배급사가 더 좋아할 거다. 저는 그것에 대한 무게감이 없다. 부담도 없다. 과거 연민 때문에 살지 않고, 미래에 기대 살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 닥친 현실이 아니면 크게 느끼지 않는다."
![배우 유태오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NM]](https://image.inews24.com/v1/3f7ec1ac188956.jpg)
-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해 인생을 바꿔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어떤 의미인가?
"주관적, 객관적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흥행하고 결과가 좋다 보니 예전엔 오디션을 다 봤다면 지금은 러브콜이 반 정도 들어와 선택의 여지와 여유가 생겼다. 인연이라는 불교적인 철학을 믿고 들어가야 해성을 연기할 때 여한이 없는 연기가 나온다. 결말이 경쾌하지만 슬픔과 아련함이 나오게 연기해야 했다. 제대로 소화하고 믿고 임해야 연기가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영화가 끝나고 나선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되더라.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학교에서 배웠던 방식으로 이력서를 만들고, 어떻게 해야 잘하는지에 접근했다. 그런데 인연이라는 요소를 캐릭터에 개입시키면 다 살았던 영혼들이다. 캐릭터가 되기 위해 설득할 필요가 없는 거다. 영혼을 받아서 행위 예술을 하는 건 매체가 다를 뿐 점 보시는 무속인분들과 비슷하다. 필름 산업에서 매체, 문화적인 차이는 있을 뿐 행위의 차이는 없다. 개똥철학일지 모르겠지만, 연기자로서 감독님의 스토리를 제가 표현하고 한 부분이 되는 것에서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패스트 라이브즈' 이후 드라마 '연애대전'과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을 찍었는데 철학을 가지고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시도를 했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은 어두운 캐릭터다. 촬영하고 집에 갔더니 아내(니리키)가 제 체취가 바뀌었다고 하더라. '역겨워서 견디기 힘들다. 언제까지 하냐'고.(웃음)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 독일 생활이 길었다 보니 한국어가 능숙하지는 않다. 이번 작품을 위해 언어적으로 어떤 노력을 했나?
"끊임없이 노력했다. 항상 탐구하고 연기 코치님과 연습했다. 여러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관찰했다. 호기심이 저에게는 핵심이다. 답이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질문을 많이 던진다. 인식의 과정을 거치니까 결과적으로 연기에 담기지 않나 싶다."
- 영어가 능숙한데 오히려 반대로 영어를 못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힘든 부분이 있었나?
"어렵지는 않았지만, 많은 고민이 들어간 연기다. 심플하게 보이게 할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악센트가 두꺼운 독어를 썼다. 영문을 한글로 써서 그대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성조, 호흡, 뉘앙스를 선생님과 준비하고 문화적 뒷배경이 있다는 것을 듣고 선택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제작하고, 우리나라 관객들만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사람이 봤을 때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자막을 읽고 내용에서 설득이 되어야 한다. 미국 영화 역사상 120년 동안 동양인 남자는 너드, 무술인, 코미디 등 장르적인 요소로 많이 쓰였는데 멜로 남자 주인공이 된다는 건 엄청난 거다. 동양적인 미학과 서양적인 미학 안에서 우스꽝스럽지 않고 무게감 있고 진지하게 들리면서 드라마의 기승전결에서 감정선이 깨지지 않도록 고민했다. 저는 적당히 설득되는 어조와 미국 사람들에게 맞는 어조가 뭔지 안다. 과해서도 안 되고 적어도 안 된다. 그걸 처음 고민하게 한 것이 양조위가 '중경삼림'에 나왔을 때다. 광동어가 잘못하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악센트가 있다. 그런데 시처럼 들렸다. 너무 아름답더라."
![배우 유태오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NM]](https://image.inews24.com/v1/d45eb7ad9ee961.jpg)
- 군대 장면도 그렇고 20대 연기를 해야 했다. 시간을 거스른 연기를 할 때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연기자의 인터뷰를 보면서 해답까지는 아니라도 영감을 얻는다. 외면은 의상팀, 미술팀에게 맡겼고, 몸동작이나 눈빛, 목소리 신경을 썼다. 어렸을 때 톤이 높고 10년 뒤엔 조금 더 낮다. 묘하게 신경을 썼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도 다르다. 20대 대학생 때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빛에 호기심이 있다. 이후엔 조금 더 경험했고, 뉴욕으로 가서 첫사랑을 끝맺음할 때 10년의 세월이 눈빛에 담겼다."
- 오디션을 봤는데 어떤 부분에 마음이 끌렸나?
"캐릭터 연구를 할 때, 그전까지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먼저 본다. 차이점을 포기하고 공통점을 극대화해서 파고든다. 그중 하나는 한이라는 요소다. 자기 환경을 받아들이면서 변화시키지 못한 억울함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문화, 배경이 달라도 어떤 사람이든 똑같이 느낄 수 있고 설득이 된다. 여러 가지 결과로 나올 수 있는데, 반항 안에서 분노, 슬픔, 우울함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마음이 넓으면 아련한 미소로도 나온다. 여러 선택과 표현으로 나오게 된다."
- 그 한이라는 것이 15년 무명 생활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나?
"연결된다. 16, 17년 동안 심리상담을 받았다. 우울증이 있었다. 저는 멜랑꼴리한 감수성을 좋아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처진다. 항상 우울했는데 그게 업이 됐다. 외로움 때문이다. 독일에서 이방인 같기도 하고,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르겠다. 그걸 직업에서 긍정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게 됐다."
- 바에서부터 이별을 하게 되는 마지막 시퀀스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았는데, 그날의 분위기는 어땠나?
"바 신은 각자 연습을 많이 해서 이틀 밤새 찍었다. 낮에는 자고 밤에만 찍었다. 여러 시도를 하면서 뭔가 홀가분하게 마무리를 한 것 같다. 그곳이 힙스터들이 많고, 젊은 친구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각자 뉴욕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배고프고 낭만적인 학생 시절에 알바하러 다녔다. 그런 곳에 20년 후 우리 이름이 붙어있고 주인공으로서 앉아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주어진 환경이 특별했던 순간이었다."
![배우 유태오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CJ ENM]](https://image.inews24.com/v1/fa9b9bc7767437.jpg)
- 성장 배경이 미치는 영향이 컸나?
"다국적 배경이 있다 보니 로케이션을 가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 있다. 그 문화에 맞춰서 사는 것인데 제 배경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를 단순화시킨다. 외롭기는 하지만 감사하기도 하다. 아내와 얘기를 하면 특권의 자리라고 한다. 다른 배우들보다 저의 컬러 팔레트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 쓰는 언어와 매치했을 때 재미가 있고 저만 할 수 있다."
- 굉장히 단단하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느낌이 있다.
"제가 배우가 된 것은 자존감이 낮아서였다. 배우들은 결핍이 있고 트라우마가 있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것을 솔직하게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느냐의 차이다. 단단함이라기도 보다는 단점의 인식이고, 용감하게 보여드리려고 하는 거다. 그게 제 방식이다. 성공 요소가 없었다면, 저는 어린이대공원에서 피에로로 버스킹을 하며 연기했을 거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5년 동안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외국 작품도 하면서 제 인지도를 높이고 싶다. 그다음에는 프로듀서로서 시나리오 작가를 고용해서 작품을 호기심 있게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제 마지막 꿈인데 60, 70세 됐을 때 연기 단체를 만들고 싶다. 현장에서 경험했던 모든 것을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서 영어로 교육하고 싶다. 아시안 배우들을 오디션 시켜서 세계 배우로 만들고 싶다. 다음 세대를 위한 단체를 만들려면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하고 제가 길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길을 만드는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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