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의 Kiss&Cry Zone]임창용, 생애 마지막 태극마크를 위해

"후쿠도메에게 설욕할 일도 있어" WBC 출전 의지 강력


4번째 도전 끝에 해외진출의 꿈을 이룬 임창용(32, 야쿠르트 스왈로즈)이 지난 10일 제13회 일구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 사흘 전 귀국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취재진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 조용한 행보를 보였고, 시상식장에도 그는 수수한 차림으로 참석했다. 행사 중간엔 간간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무표정한 순간이 많았다.

임창용의 해외 진출 선언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자격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억지를 부리며 젊은 혈기를 내보였다. 다음 해인 2002년 이적료를 지불하고 가야 한다는 조건하에 메이저리그 진출을 바라봤지만 포스팅 시스템에서 최고 입찰액이 65만 달러에 그치는 바람에 다시 국내에 잔류했다.

이후 2년 뒤 2004년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자유계약선수(FA)가 되었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메이저리그 여러 구단과 일본 프로야구 구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성사 직전까지 가는 듯했지만 에이전트와의 갈등과 맞물려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또 다시 삼성에 눌러앉고 말았다. 대신 구단측에서 '언제든지 해외 진출의 기회가 있다면 보내주겠다'라는 옵션을 추가하는 것으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마음을 다잡은 임창용은 오른쪽 팔꿈치 수술과 재활을 병행하면서 3년의 시간을 뚜렷한 활약 없이 보내야 했고, 삼성 팀내에서의 그의 입지는 5억원이라는 거액의 연봉 선수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2007시즌을 마친 뒤인 11월 마지막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임창용이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성사된 계약조건은 3년 계약에 최대 500만 달러, 첫 해 연봉은 외국인 선수가 받는 최저 수준인 30만 달러에 그쳤다. 물론 각종 옵션이 있어 능력과 성적에 따라 성과급이 나오는 조건이었지만 '임창용'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꿈을 이루게 돼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일본행 비행기에 냉큼 올라탔다. 그가 일본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결코 올해 이처럼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올 것이라고는 기대도 예상도 하지 못했다.

1년이 흐른 뒤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한국 야구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고 임창용은 야쿠르트 '수호신' 자리를 꿰찼다. 54경기에 출전, 1승 5패 33세이브 방어율 3.00의 성적을 거두고 '코리안 특급'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뽐냈다.

임창용은 11월 즈음 이용철 해설위원으로부터 '일구상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될 것 같으니 전화기 켜놓고 연락이 닿을 수 있게 하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야구계 대선배님들이 주시는 상이기 때문에 더 영광스럽고 기쁩니다. 더 많은 선수들이 잘해서 상 많이 받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시즌 계획을 밝히면서 3월말 일본 프로야구 시즌 개막이 아닌 3월초 WBC 대회에 초점을 맞추고 몸만들기에 돌입할 것이라고 했다.

임창용은 1월초부터 괌에서 개인훈련을 시작할 계획이라며 제1회 WBC 대회(2006년) 불참이 아쉬웠다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 땐 제가 팔꿈치 수술하고 재활 중이었거든요. 내년이면 34살(한국나이)이 되는 만큼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무대에 한 번쯤 참가하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일본 진출 후 부족함을 느낀 구질의 단조로움을 포크볼로 대체하겠다는 의지로 한창 연습중이라며 아직 소속팀과는 WBC 참가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은 상태고 2월초 소속팀 스프링캠프에서 관계자와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임창용은 설욕하고 싶은 선수도 있다고 밝혔다. "일본 가면 꼭 한 번 붙어보고 싶었던 선수가 있었는데 메이저리그로 떠났더군요(웃음)." 시카고 커브스로 이적한 후쿠도메가 그 주인공이라고 했다.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투 스트라이트 후에 3구째 체인지 업을 던졌다가 2루타를 내준 경험이 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꽤 오래 전 일이지만 그는 정확히 기억하며 잊지 않고 있었다.

임창용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다. 그리고 근 10년 만에 '해외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고 했다. 내년 목표를 1군 잔류와 30세이브 달성이라고 밝혔지만 그에게서는 WBC 대회 출전 쪽에 모든 것을 맞추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중요한 동계 훈련을 WBC에 맞춰 일정을 짜겠노라고 밝혔고, 그로 인해 생길지 모르는 미래의 손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아직 대표팀 엔트리가 결정난 건 아니지만 대회에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며 준비하고 있을 계획입니다. 물론 다른 시즌보다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리면 시즌 막바지엔 체력적으로 힘들 수도 있겠지만..."

준비하고 기다리겠다는 선수를 마다할 이유가 없고,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를 거부할 까닭이 없다. 내년 3월 생애 마지막 국가대표로 나설 임창용의 호투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홍희정 객원기자 ayo3star@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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