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진 삼성 불펜과 오승환의 '책임감'

삼성의 '지키는 야구'가 다시 부활할 것인가. 일단 답답했던 가슴에 숨통은 트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역할은 주전 클로저 오승환이 담당했다.

삼성은 지난 23일 대구에서 열린 한화와의 홈경기서 박석민이 홈런 2방을 때려내는 활약에 힘입어 3-2로 역전승을 거두고 우울했던 5연패 수렁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이날 삼성 승리의 원동력은 공격진이 아닌 투수진이었다.

사실 삼성은 선발 이우선(4이닝 4피안타 3볼넷 2실점)이 1회초 2사 후 디아즈와 김태완에게 백투백 솔로포를 내주면서 또 다시 불운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하지만 이우선이 차츰 안정감을 찾아간 뒤 4회까지 잘 버텨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

문제는 5회 선두타자 이영우에게 2루타를 내준 뒤 시작됐다. 선동열 감독은 이우선이 더 이상 무리라고 판단하면서, 슬슬 불펜 야구를 시작했고 이후 6회말 박석민이 역전 투런포를 터뜨리며 경기를 뒤집자 8회초부터 본격적으로 지키는 야구를 시작했다.

결국 지키는 야구의 핵심은 정현욱-권혁-오승환이었다. 이우선의 뒤를 이어 최원제-백정현-김상수를 내세웠지만 이 때만 해도 1-2로 뒤진 상황이었고, 6회말 역전 이후 김상수의 구위가 아직 괜찮다고 판단한 선 감독은 일단 7회까지 그에게 마운드를 맡겼다.

하지만 경기 후반이 되자 본격적으로 '필승계투조'를 투입시켰다. 정현욱은 8회초를 삼자범퇴로 마무리짓고 깔끔하게 벤치로 귀환했고, 9회초엔 좌완 권혁이 등판해 좌타자 강동우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고 내려왔다. 이후 마무리는 당연히 필승조의 핵심 오승환.

지난 21일 잠실 LG전에서 대타 이진영에게 2타점 적시타를 내준 뒤 박용택에게 데뷔 이후 첫 만루홈런을 허용하며 글러브를 내팽개친 '돌부처' 오승환은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기라도 하듯 과감히 스트라이크를 꽂아넣으며 정면승부를 펼쳤다.

10개의 공 중 무려 8개가 스트라이크 코스였고, 그야말로 '칠 테면 쳐봐라'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오승환은 대타 양승학과 디아즈를 삼진과 3루수 땅볼로 솎아내고 16세이브째를 당당히 챙겼다. 11일 SK전 이후 13일만에 거둔 세이브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5연패를 당한 삼성은 2년만에 7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맛봤다. 침체된 화력에 부상자까지 속출했고, 삼성 야구의 핵심인 불펜이 무너지는 조짐을 보여 삼성의 불안감은 극에 치달았다.

A조(필승조)와 B조(패전 혹은 추격조)와의 기량 차이가 너무 현격해 선동열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정현욱, 권혁을 무리하게 등판시킬 수밖에 없었고, 오승환조차 올 시즌 들어 아슬아슬하게 세이브를 챙기는 경우가 많아 삼성의 불펜은 강점과 동시에 불안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지난주 5패를 하는 동안 이들이 4경기서 '방화'를 합작해 삼성의 유일한 색깔인 '지키는 야구'는 치명타를 입었고, 이에 팬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특히 감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한 오승환이 글러브를 내팽개치는 장면은 삼성팬들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뼈아픈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경기 중반까지 앞서 있을 경우 대부분 승리를 굳혔던 삼성이었고, 그 승리에 마침표를 찍는 이가 오승환이었기에 그의 '방화'는 다른 팀의 경우와는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다. 삼성 야구의 핵심, 선동열 야구의 핵심이 바로 오승환이고, 그가 부진하다면 '지키는 야구'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승환은 22일 월요일(휴식일) 숨고르기에 들어간 뒤 23일 자신의 존재감을 야구팬들에게 다시 알렸다. 이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오승환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전의를 생생히 느낄 정도였다.

삼성의 주전 클로저를 넘어 대한민국의 뒷문을 책임지는 오승환이 무너지는 장면은 야구팬들에게 응원하는 팀을 떠나 아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오승환 역시 본인의 책임감을 알고 있기에 더욱 손에 힘을 줬고, 이틀만에 다시 건재함을 과시하며 구원 단독 선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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