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꿈꾸는 대학 4년 유망주] 스카우팅 리포트③ 포수


2010 신인드래프트에서 대졸 포수의 지명률은 30%에 달했다. 총 20명의 지원자 중에 6명이 프로의 부름을 받았는데 이는 전체 지명률 10%와 비교하면 꽤 높은 수치다. 고졸 포수는 25명 가운데 단 2명만이 프로 지명된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 의미는 남다르다.

투수를 리드하고 팀 전체의 파이팅을 주도하는 안방마님의 가치는 세월이 가도 변함없다. 한 번 자리를 꿰차면 10년은 넉넉한 포지션이 바로 포수다.

작년 드래프트에서는 괜찮은 포수들이 대거 배출돼 드래프트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올해는 눈에 띄는 선수가 많지 않다. 한 팀에서 주전 마스크를 쓰면 좀처럼 그 자리를 넘겨주지 않고 해를 바꿔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포수가 지니고 있는 최대 장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프로 지명에 유리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프로에서도 그 어떤 포지션보다도 신중하게 포수를 선택하는 편이다. 길게 보고 뽑아야 하는 중요한 위치라는 인식이 널리 퍼진 탓이다.

▶연세대 나성용(183cm 93kg)
자타가 공인하는 대졸예정 포수 최대어로 손꼽히는 나성용은 같은 학교에서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고 있는 나성범(21, 연세대3)의 친형으로 형제가 야구선수로 활약 중이다. 광주진흥고 3학년 시절 팔꿈치 부상으로 유급을 했고 다음 해이던 2007 신인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LG에 6라운드(전체 46번)로 호명되기도 했지만 그는 대학을 선택했다.

"만약 그 때 프로에 갔다면 아마 지금쯤은 야구를 그만뒀을 지도 몰라요. 포수는 대학을 나오는 것이 훨씬 유리한 것 같아요."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듯 보이지만 사실 잔부상으로 지난해엔 마스크를 쓰기보다는 지명타자로만 나서는 등 반쪽선수로 지냈다. 재작년 정기 연고전에서 부상을 당한 것이 지난 시즌 전반기 출장을 막았던 것.

"포수를 하면서 타석에 서는 것이 개인적으로 훨씬 좋아요. 올해는 타격보다는 수비 쪽에 치중하면서 포수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싶어요."

한동안 부상으로 체중이 105kg까지 불었지만 일본 전지훈련과 부산에서 동계훈련을 소화하면서 90kg대 초반으로 몸무게를 끌어내려 한결 날렵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팀의 주장으로, 또 4번타자의 중책을 맡은 나성용은 이미 진흥고 시절부터 장거리 타자로 주목을 받았다. 대학진학 이후에도 한 해도 빠짐없이 홈런 랭킹 안에 이름을 올리며 방망이만큼은 최고의 포수임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해엔 부상에서 벗어난 뒤 5월부터 대회에 참가했는데 타격은 막판에 불이 붙었다. 9월에 열린 KBO총재기 대회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중간에 개최된 연고전에서 3-3 동점이던 6회 고려대 에이스 신정락(현 LG)의 볼을 받 넘겨 역전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팀은 패했지만 이 날의 홈런은 나성용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한창 감이 좋았는데 시즌이 끝났어요.(웃음) 올해가 대학 마지막 시즌인 만큼 타격보다는 송구 정확성을 높이고 수비에 신경을 쓰면서 게임에 나서려구요. 공격형 포수가 아닌, 수비도 좋은 포수로 말이죠."

▶경성대 신영재(179cm 83kg)

신영재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나이였던 수창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동성중학교에 진학해 마스크를 쓴 것이 포수로서의 인연이 되었다.

"저학년 때부터 계속 야구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졸랐는데 안된다고 하셨죠. 하지만 제 고집을 꺾지 못하셨어요.(웃음)"

동성고 시절 한기주- 양현종과 배터리를 이루며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들의 성장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중학교 시절 1년 유급을 해서 1년 선후배 사이인 한기주-양현종과 모두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신영재는 졸업 이후 경성대에 진학했다.

"기주나 현종이랑은 지금도 자주 연락하죠. 기주는 (복귀에) 좀 시간이 걸릴 것 같고, 현종이는 요즘 어깨에 힘 좀 주는 것 같고...(웃음)"

상무에서 활약 중인 이지영(삼성소속)의 후배이기도 한 신영재는 올 시즌 3번 혹은 5번 자리를 꿰차고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수비 잘하는 선수라는 말이 듣고 싶어요."

한 방을 쏘아올리기보다는 정확하게 맞히는 재주가 있어 고교시절에도 타격상을 받았고 대학에서도 타격 부문에서 수상 경험이 많다. 대학 2학년 때는 18경기에 출전, 타율 3할9푼3리(56타수22안타), 장타율 5할8푼9리(33루타)를 기록해 각각 5위를 마크하기도 했지만 지난 시즌엔 다소 주춤했다.

"수비에 집중하면서 타율 관리를 하지 못했어요.(웃음) 남들보다 파이팅 면이나 블로킹 같은 건 자신 있는데 견제 능력이 부족해요. 앞으로 개선해야죠."

매년 한 대회 이상은 우승을 차지하는 경성대의 주장답게 춘계리그 정상을 차지하겠다는 각오도 숨기지 않았다.

▶한민대 김사훈(176cm 82kg)

원래는 투수와 포수를 겸했던 김사훈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때 포수 전업을 시작했다. 부산대신중학교와 부산고를 거쳐 국제디지털 대학에 입학했지만 1학년 때 팀이 해체하면서 한 해 공백을 겪었고, 이후 한민대로 편입했다. 2006 신인드래프트서 롯데에 1차 지명된 손용석(내야수)과 동기인 김사훈은 고교 시절엔 형편없이 마른 체구의 소유자였다.

스스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고 현재는 20kg가까이 체중을 늘렸다.

"확실히 타격할 때 파워가 붙어 타구가 멀리 나가요.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어도 체력적으로 훨씬 힘든 게 덜한 것 같고... 이 정도면 체격은 괜찮은 것 아닌가요?(웃음)"

팀내 중심타선에서 뛰고 있지만 김사훈의 최대 약점은 큰 스윙이다. 주변 동기들의 충고도 같다. 욕심을 버리고 타석에서 제 스윙의 80% 정도만 해 준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체구에 비해 빠른 배트 스피드를 갖고 있고 컨택 능력도 있기 때문에 이 점만 숙지한다면 훨씬 나은 타격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사훈은 자신을 수비쪽에 더 강한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송구의 정확성과 빠르기, 그리고 강한 어깨를 장점으로 손꼽는다.

한민대는 2005년에 창단된 팀으로 약체로 평가를 받았지만 재작년부터 강팀들을 상대로 깜짝 승리를 챙기며 복병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춘계리그에서는 8강에 오르기도 했다.

"팀 분위기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올해도 감독님은 4강을 말씀하시는데 저희들끼리는 우승하자고 다짐했죠.(웃음)"

올해도 신입생이 9명이나 새로 들어와 풍부한 선수층을 보유한 만큼 지금 보다는 내일이 기대되는 좋은 팀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모교의 앞날을 밝게 전망하기도 했다.

"무조건 경기장 안에서 열심히 플레이하는 모습 보여서 스카우트님들께 잘 보여야겠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죽을 힘 다해 뛸 겁니다."

▶경희대 정우양(182cm 80kg)

"시즌을 앞두고 자꾸 긴장되고 걱정이 앞서요. 드래프트 행사 당일날 지명되지 않는 꿈도 꾸고..."

충암고 시절엔 나성용과 함께 고교 최고의 포수로 손꼽히며 기대주로 불리웠던 정우양은 대학 진학 이후엔 부상으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입학하자마자 게임에 나섰는데 선배 형들 힘을 따라가려고 의욕을 앞세우다가 허리부상이 찾아왔어요. 고교와 대학은 당연히 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땐 몰랐었던 거죠."

지난해엔 포수로 나서지 않고 1루수나 지명타자로 대회에 나서며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냈다. 18경기에서 3할7푼5리(48타수18안타)의 타율로 타격 12위에 랭크되면서 존재감을 보였지만 수비쪽에서 능력을 보이지 못한 것이 불안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어깨도 나름대로 강했고 모든 것이 자신있었어요. 대학에 와서 자주 쉬고 한 번 아프고 나니까 자신감을 잃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감독님이 '너 프로 갈래 대학 갈래' 했을 때 대학 가겠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 와서 후회되기도 하고..."

대부분 진학을 앞두고 선수 본인의 의사를 물어 진로를 타진하는 편인데 정우양은 당시 프로행도 가능할 만큼 유망주로 손꼽혔다. 하지만 스스로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할 것 같았고, 또 대학생활에 대한 남다른 희망도 컸기에 프로 입단은 4년 뒤로 미룬 것이다. 동생인 정우남(내야수)도 형과 지난 시즌까지 함께 선수생활을 했지만 현재는 군입대를 한 상태다.

"동생은 체격이 좀 왜소하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하더군요. 함께 지내다가 혼자가 되니 좀 휑하기도 하고..."

아들 둘을 야구선수로 키워온 부모님의 고생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꼭 성공해야 한다는 정우양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과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을 동시에 목표로 꼽았다.

"노력한 만큼만 이뤄지면 좋겠어요. 그 날이 오겠죠?"

<4편에서 계속~>
홍희정 객원기자 ayo3star@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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