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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과 벤처의 첫 만남...그들의 대화록


 

시장 소수자 벤처기업인들이 정계 비주류 민노당에게 털어놓은 속 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1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주최 '벤처인과의 대화'는 두 가지 이유에서 관심을 모았다.

하나는 민노당이 공식적으로 '기업을 살리자'며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한 탓에 민노당이 기업 대표들을 초청해 현장의 소리를 듣겠다고 나선 것 자체가 낯선 풍경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업중에서도 첫 대화 상대로 벤처기업을 선택했다는 점. 여러 형태의 기업 중 '벤처'와 가장 먼저 대화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간담회 전부터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 "대기업 횡포 맞서 중소기업 대변할 정당은 민노당 뿐"

간담회 진행을 맡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반기업적일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우리는 반기업 정당이 아니다"라고 못 박으며 모두 발언을 시작했다.

심 의원은 "민노당이 반대하는 것은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를 통한 대기업의 성장, 재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일 뿐"이라며 민노당에 대한 '편견'에 선을 그었다.

또 "과거 노조활동을 하던 시절 자동차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던 업체들을 많이 만났다. 현장 사정을 잘 아니 기탄없이 말해 달라"며 '현장감 있는 대화'를 주문했다.

화답이라도 하듯 이상빈 메인텍 대표는 "나는 바이오 사업을 한다. 바이오는 벤처 중에서도 소수자다. 그래서 정계의 소수자인 민노당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해 분위기를 띄웠다.

간담회에서 심의원은 "대기업이 하청 업체에 불공정 거래를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며 "그런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중소기업, 벤처기업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정당은 민노당 뿐"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벤처 대표들이 제기한 대출 과정의 어려움, 정책 및 자금 지원 체계의 불합리성, 대기업의 횡포 등에 "적극 공감 한다"면서 "작년 국정감사 기간동안 그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었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약자이자 비주류인 벤처기업’ 심정을,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 온 '정계의 비주류 민노당'이 알아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참석하는 것만도 용기가 필요했다"

심 의원의 '분위기 조성'에 벤처기업 대표들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민노당과의 대화에 참석하는 것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며 말을 아끼던 벤처기업 대표들은 민노당 주대환 정책위 의장의 '벤처지원정책' 설명 이후 '쓰린 속'을 내보였다.

처음 말문을 연 사람은 강관식 아토정보기술 대표.

강 대표는 "회사 설립 초기, 기술신용보증기금에 갔더니 대출 기준이 전년도 매출이라고 하더라"며 "기술투자를 하는 초기 2~3년 간 벤처에 매출 실적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대출을 신청했던 일을 예로 들어 "시설자금 빌리러 갔더니 담보 설정에서 전 직원 3개월 분 임금과 퇴직금을 빼는 거라고 하더라. 계산하면 수억원이다. 그 돈 있으면 대출 받으러 갔겠느냐"고 비현실적인 자금 대출 기준에 답답함을 호소했다.

'돈' 얘기가 나오자 참석한 벤처 대표들은 저 마다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이상빈 메인텍 대표는 "벤처에게는 정말 '돈이 원수'"라면서 "한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같은 기업이 나올 수 없는 이유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나 한국 벤처기업이나 차고나 지하실같은 데서 '미약하게' 시작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MS에겐 그들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자금 대출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는 참석자 대부분이 한 목소리를 냈다.

어떤 벤처기업인은 "기술신보는 매출신보로 이름을 바꾸라"며 일침을 놓았다. 막 태동하는 벤처에 그럴듯한 외관이나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게 대다수 대표들의 의견이었다.

벤처의 자산인 '기술'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긴 대출 과정을 단순화, 일원화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네트워크 론(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부터 납품의뢰서를 받으면, 그것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에 대한 비판도 매서웠다.

임병진 성진씨앤씨 대표이사는 "납품의뢰서로 돈 빌렸다는 얘기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재무제표에 드러나지 않는 '가능성'만으로 벤처가 돈을 빌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도가 있어도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영선 싸이버뱅크 사장은 "각 정부 부처가 운용하는 연구개발 지원금을 대부분 대기업이 흡수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요건에 산하 연구기관과 함께 제안서를 작성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라는 조항이 있다며 울분을 터뜨리는 대표도 있었다. 산하에 연구소를 둘 정도면 그건 이미 벤처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 "대기업, 해도 너무 하더라... 법과 제도는 '갑'의 편"

간담회 마무리 시간이 다가오자 참석자들은 가슴속에 품어놓은 '1급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다.

창업 8년차인 조성구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는 "여러분은 모두 자금 얘기를 하지만, 지원을 받고 상품 개발을 완료해도 대기업과 상생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 어떻게 시장에 진입하느냐가 관건"이라며 무겁게 입을 열였다.

조 사장은 지난해 여름, 감히 대기업, 그것도 업계 최강자인 삼성SDS를 사기혐의로 고소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그는 삼성SDS와의 분쟁 사례를 전하며 "대기업의 덤핑수주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중소기업, 벤처기업에 손실이 고스란히 떠넘겨지는 악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다고 생각했는데 검찰도 결국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며, "법과 제도도 '갑'의 편 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조 사장에 이어 조영선 싸이버뱅크 사장이 전하는 LG텔레콤과의 분쟁, 최광묵 메버릭시스템 사장의 증언이 이어졌다.

또 다른 벤처 대표도 "보복이 두려워 이름은 거론할 수 없다"면서도 "덤핑수주를 막고 낙찰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BMT(성능시험) 과정 공개, 제안서 비용 지급, 업체 선정 기준과 이유 공개 등이 필수적"이라며 간곡한 의사를 전했다.

◆ 민노당, "현실적으로 돕겠다"

벤처 기업인들의 '용감한 증언'을 전해들은 민노당측은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민노당 조승수 의원은 "무엇보다 부당한 하청 수주 문제를 개선하도록 애 쓰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의원과 단병호 의원 역시 "덤핑낙찰을 통해 사업 수주 경력만 챙기고 손실은 중기, 벤처 기업에 떠넘기는 대기업의 횡포가 근절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노당 의원들은 또 "중소, 벤처기업 관련 정부와 관계 기관의 예산 운용 자료를 요구해 적절한 곳에 쓰였는지 꼼꼼히 짚고 넘어가겠다"고 밝혔다. 얼라이언스 시스템 대표에게는 "국회 법사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관계자들에게 해당 내용을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진행을 담당한 심상정 의원은 "민노당이 당장 모든 걸 바꿔드릴 수는 없다. 그걸 약속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힘을 모으고 사회 문제화 하겠다. 그러니 민노당을 문제해결의 디딤돌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번 간담회를 '일회성 정치 세레머니'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정책 제안에 반영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남들이 가지 않은 '외로운 길'을 가는 벤처기업과 소외계층 이익을 대변하며 '험한 길'을 걸어온 민주노동당. '닮은 꼴'끼리의 첫 만남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주목된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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