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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2023 결산③] 게임업계 집어삼킨 혐오 논란…사태의 본질은


원청에 반하는 결과물 내놓은 하청…젠더 갈등으로 비화된 논란

[아이뉴스24 문영수 기자] '메이플스토리'에서 촉발된 남성 혐오 논란이 2023년 게임업계를 달군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여성계를 주축으로 젠더 갈등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갈등 구도가 증폭되는 양상이지만 사태의 본질은 하청이 원청에 반한 작업물을 내놓아 촉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업계에 '남혐'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달 26일이다. 게임 커뮤니티 등에서 넥슨의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신규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에 집게손가락 모양의 남성 혐오 표현이 포함됐다는 소식이 퍼졌다. 특히 해당 영상을 제작한 하청업체인 스튜디오뿌리 소속의 한 직원이 남성 혐오를 자행했다는 SNS 게시물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을 10배속 이하로 느리게 돌린 버전에서 확인되는 손모양.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애니메이션 홍보 영상을 10배속 이하로 느리게 돌린 버전에서 확인되는 손모양.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사태를 인지한 넥슨은 26일 새벽 관계자들이 출근해 문제의 영상을 전수조사하며 문제의 여지가 있는 집게손가락을 다수 찾아냈다. 넥슨 이외에도 스튜디오뿌리 측과 작업한 국내 여러 게임사들이 자사 콘텐츠를 점검하고 이용자들에게 사과문을 공지했다.

메이플스토리의 김창섭 디렉터는 26일 오후 7시 긴급 라이브 방송을 열고 "회사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 중"이라며 "관련된 모든 영상을 내렸고 이를 활용한 마케팅도 중단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던전앤파이터 이원만 총괄 디렉터 역시 "불쾌한 감정을 주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문제가 된 범위가 넓을 수 있기 때문에 빠짐없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태를 일으킨 스튜디오뿌리 측은 1차 사과문을 통해 책임을 인정했다. 이 회사는 26일 입장문을 통해 "의혹이 있는 모든 장면은 저희 쪽에서 책임지고 수정하고 해당 스태프는 앞으로의 수정 작업과 더불어 작업 중인 모든 PV(프로모션비디오)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작업하고 있는 것도 회수해 폐기하고 재작업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튜디오뿌리의 사과로 일단락될 듯했던 이번 사태의 기류가 바뀐 건 지난달 27일부터다. 스튜디오뿌리는 이날 공식 X(옛 트위터)를 통해 2차 사과문을 게재했으나 돌연 삭제했다. 또한 이튿날인 28일에는 판교 넥슨 사옥 앞에서 여성단체들이 주축이 돼 억지 여성혐오 몰이를 중단하라는 취지의 시위가 열렸다. 피해자인 넥슨을 가해자로 지목한 것이다. 문제의 집게손가락을 여성이 아닌 남성이 그렸다는 언론 보도도 쏟아졌다. 집게손가락 사태가 어느새 젠더 갈등으로 비화된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결국 원청(넥슨)에 반하는 결과물을 납품한 하청(스튜디오뿌리)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게임 관련 정책을 발의한 이상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9일 SNS를 통해 "이 문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청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해 원청업체에게 피해가 갈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상품을 만든 제조사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수정을 하는 게 당연하다. 게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라며 "이 문제의 악질적인 점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그들만의 혐오 표현을 숨겨 넣는 데 희열을 느낀다.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은아 의원(국민의힘)도 "여기서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이 기가 찬다. 개인이 페미니즘 활동하는 것 그 자체를 누가 억압할 수 있겠나. 문제는 이를 민간 영역의 일터로 갖고 들어왔을 때"라며 "일을 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왜 업장에서 사회 운동을 하나. 최근 이러한 문제에 대해 기업 하는 분들의 걱정이 상당하다. 일터를 파괴하는 주범이라고까지 말한다"고 지적했다.

게임업계가 혐오 사태에 민감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건 게임 서비스가 파국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419혁명과 518민주화 운동을 반란과 폭동으로 묘사하며 '일베' 연루 의혹이 일었던 모바일 게임 '이터널 클래시'는 회사 측의 명확한 입장 지연 및 초동 대처 실패로 논란을 겪다 서비스가 종료됐다. 2016년 '클로저스'의 경우 여성 성우가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린 사실이 전해지자 이용자가 급락했다. 메갈리아는 문제의 집게손가락을 상징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한편 게임업계에 혐오 논란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게임 이용자들이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병원'에 자발적인 기부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젠더 갈등이 아닌 선행으로 끝맺음 맺자'는 취지 하에 기부 릴레이를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임사들이 한시라도 빨리 소모적인 젠더 갈등 국면에서 벗어나 다시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혐오 논란에 선행으로 대응하고 있다. 성숙한 이용자들의 움직임이 돋보이는 상황"이라며 "이용자들은 누가 만들었던 간에 내가 즐기는 상품·게임에 불편을 야기하는 표현을 넣지 않길 바란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영수 기자(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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